목회자 생활·실무

"성령이 충만치 못하신 건가, 교만해지신 건가"

한국 개척교회 목사의 한 풍경

교회가 잘 안 되어도, 잘 되어도 따라오는 회중의 시선. 한국 개척교회 목사의 자리에 대한 한 외부자의 풍경 기록.

Keryx발행 2026년 5월 12일5분 읽기

외부자의 한 줄: 교회가 잘 안 되면 영성을 의심받고, 잘 되면 인격을 의심받는 자리. 한국 개척교회 목사의 풍경에 대한 외부자의 기록.


한 친구가 있다. 개척교회 담임목사다.

언젠가 그가 이런 말을 했다. 교회가 잘 안 풀리는 시기에는 — 헌금이 줄면 — 어딘가에서 한 마디가 들려온다고. 목사님 믿음이 약해지셨나 보다. 성령이 충만치 못하신 거 아닌가. 그러다 교회가 자리를 좀 잡고 가족과 짧은 휴가라도 다녀오면, 다른 한 마디가 들려온다고. 교회가 좀 되니까 목사님이 교만해지신 거 아닌가.

나는 목회자가 아니다. 친구를 통해 본 풍경이고, 이 글은 그 풍경을 외부자가 읽어본 기록이다. 외부자의 눈에 그 자리는 이래도 한 마디, 저래도 한 마디가 따라붙는 자리로 보였다.

한 사람만의 일이 아닌 풍경

이 양면이 한 사람만의 일이라면 풍경이라고 부르기 어렵다. 그러나 통계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.

「넘버즈」 291호에 실린 2025년 한국교회 정신건강 조사(목회자 500명 응답)에 따르면, 응답자의 33%가 주변에 정신질환을 앓는 목회자가 있다고 답했다. 한국교회지도자센터의 2022년 조사에서는 50명 미만 교회 목회자의 65%가 영적 피로를 호소한다.

목회데이터연구소·한목협의 2023년 조사는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. 정기적으로 설교 평가를 받는다는 응답이 24%로, 2012년 55%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. 그 24% 중에서도 피드백을 주는 사람을 묻자 75%가 배우자와 가족이라고 답했다. 교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11%였다.

회중의 시선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. 평가의 채널이 바뀐 것이다. 정식 피드백 자리는 줄어들고, 비공식 수군거림으로 옮겨간 풍경. 친구가 들었다는 두 마디는 그 비공식 채널의 한 단편이다.

잘 안 되면 들리는 말, 잘 되어도 들리는 말

친구를 통해 듣는다. 한 마디는 둘로 나뉘어 온다고 한다.

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들려오는 말들이 있다. 목사님 믿음이 약해지신 거 아닌가. 성령이 충만치 못하신가. 기도가 줄어드신 모양이다. 주의 종이 그러면 안 되지. 한 마디 한 마디가 온도는 달라도 가는 방향은 비슷하다. 어려움의 원인을 목사 자신의 영적 결핍에서 찾는다.

교회가 자리를 잡고 한숨 돌릴 때 들려오는 말들도 있다. 목사님이 교만해지신 거 아닌가. 잘 되니까 게을러지신 모양이다. 휴가를 다녀오셨다더라. 이쪽 한 마디들도 가는 방향은 비슷하다. 잘 됨의 원인을 목사 자신의 인격적 변화에서 의심한다.

이래도 저래도 한 사람의 영성과 인격이 평가의 자리에 놓인다.

한 번 듣고 두 번 입을 열지 못하는 자리

이 양면 시선이 만드는 결과 중 하나는 가벼운 침묵이다.

같은 친구의 다른 풍경. 그는 한 번 동기 목사에게 자기 무거움을 꺼냈다가 신학적 진단을 받은 뒤로, 다음 모임부터 "잘 지낸다"는 답으로 머물기 시작했다고 했다. 그 답에 진심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고도 했다.

회중 앞에서도 풍경은 비슷하다. 어려움을 보이면 영성을 의심받고, 평안을 보이면 교만을 의심받는다. 그래서 잘 다듬어진 표정 하나가 강단 위에서도 강단 아래에서도 같은 모양으로 머물러야 한다.

앞서 본 통계가 다른 의미로 와 닿는 것은 이 자리에서다. 정식 평가의 자리가 줄어들고, 진심을 꺼낼 자리는 더 줄어든다.

외부에서 보기에 이 풍경에는 작은 무게가 하나 더 있다. 어떤 자리에서도 의식이 잠깐 풀어지기가 어렵다는 것.

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

목회자 본인의 목소리부터.

뉴스앤조이가 2014년 실은 한 우울증 고백 기고에서, 한 목회자는 자신의 죄책감을 묘사했다. 자신이 이래야만 하는 모습과 지금의 자기 사이에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고, 그 거리 자체가 또 다른 죄가 되어 돌아온다고 그는 적었다(뉴스앤조이, 2014). 영적 결핍의 진단이 본인 안에서 가장 먼저, 가장 가혹하게 작동하는 자리가 거기 있다.

학술의 자리에서 보면 이 풍경은 이름을 얻는다. 목회상담학자 하재성은 한국 목회자의 우울과 탈진을 한 단어로 부른다. "거룩한 자기 착취"(하재성, 「목회자의 우울증과 탈진: '거룩한' 자기 착취의 성과」, 한국복음주의상담학회, 2015). 단순한 과로의 결과가 아니라, 사명·소명·헌신이라는 거룩한 언어로 자기를 끝없이 채찍질한 누적이라는 분석이다.

거룩한 언어는 멈출 명분을 빼앗는다. 더 기도하라. 더 헌신하라. 더 견디라. 그리고 이 거룩한 언어가 어렵게 무거움을 꺼낸 사람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왔을 때, 우리가 앞에서 본 양면의 말들이 된다. 영성이 부족하다는 진단이든, 교만해졌다는 진단이든.

전문의의 자리에서 보면 풍경은 또 다르다.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기립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. "우울증을 생물학적 질병으로 이해하는 과학적 관점이 한국의 교계에는 아직 많이 결핍되어 있다"(뉴스앤조이, 2014).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라는 의학적 사실 위에 영적 진단을 덮어놓으면, 약을 먹어야 할 사람이 더 회개해야 한다는 답을 들고 돌아간다.

이 풍경은 오늘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. 19세기 영국 침례교 강단을 지킨 찰스 스펄전은 자기 안의 어둠을 솔직히 기록했다. 외로움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라고, 그것이 우울의 한 원천이기도 하다고 그는 적었다(스펄전, 자전적 기록). 그토록 큰 강단을 지킨 사람조차 자기 안의 그늘을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.

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어떻게 부르는지, 학자가 그 자리를 어떻게 분석하는지, 의료인이 그 자리를 어떻게 보는지, 시간이 다른 사람이 같은 자리를 어떻게 견뎠는지. 들리는 만큼만 옮겨놓아도 풍경이 한 번 더 또렷해진다.

비워두는 자리

회중의 시선이 양면으로 갈라져 한 사람을 따라가는 자리. 어디로 움직여도 영성과 인격이 평가의 자리에 놓이는 자리. 이 풍경 안에서 영적 진단으로 답할 사람도 있고, 의료적 진단으로 답할 사람도 있다.

외부자가 그 자리에 들어가 답을 정할 자격은 없다. 다만 외부자라도 짐작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있다.

목사라는 자리에 선 한 사람에게도, 영적 진단보다 인간적인 격려와 위로, 한 마디의 응원이 먼저 필요한 순간이 있다. 그것이 어렵다면, 차라리 진단의 한 마디를 보태지 않는 일. 잘 되든 안 되든, 한 마디를 더 얹지 않고 듣기만 하는 자리를 한 사람이라도 늘리는 일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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